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단 편집) === [[유고슬라비아]] 시절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0px-Yugoslav_Football_Federation_1990.png|width=100%]] }}} || || {{{#000000 유고슬라비아 축구 연맹 엠블럼 }}} || 발칸 반도와 동구권의 강호로 명성을 떨쳤으며, 현재 공식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시절 역사를 계승한다. 국내 리그로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를 운영했고, 국내 리그도 클럽 축구계에서 실력있는 리그로 평가받았다.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절이던 1930년 초대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시작으로 유고슬라비아는 국제 축구계에서 줄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프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다시금 축구계에 등장해 1950년 월드컵부터 1962년 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어냈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잇따라 8강에 올랐고,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32년만에 월드컵 4강에 다시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1960년 유럽 선수권 대회,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하며 동구권의 강호로 성장했다. 당시 유럽 선수권 대회는 본선 진출국이 불과 4개국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유고슬라비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시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을 [[1962 칠레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3-1, 5-1로 가볍게 이기며 대한민국에 세계 무대와의 수준 차이를 제대로 느끼게 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1년 전 [[AFC 아시안컵]] 2연패에 성공하며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팀이었다. 나름 8년만의 월드컵 복귀를 노렸으나 유고슬라비아는 대한민국 입장에선 너무나 강한 상대였다.] 그러나 그동안 동유럽의 강호를 자처했던 유고슬라비아는 1970년대에 접어들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며 연이은 예선 탈락을 경험한다. 1966년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을 시작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1970년 월드컵, 1972년 유럽 선수권에 연이어 탈락하고, 1974년 월드컵 8강 진출, 1976년 유럽 선수권 4위의 성적으로 정신을 차리는 듯 하더니 다시 1978년 월드컵과 1980 유럽 선수권을 또 날려버렸다. 소련과 함께 꾸준함의 상징이었던 유고슬라비아는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팀이 되어갔고 다시금 본선에 올라간 1982년 월드컵에서의 실망스런 조별리그 탈락과 유로 1984의 처참한 조별리그 3연패로 확실히 좋은 시절 다 갔다는 것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부활하는 듯했으나,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는 분열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0년 FIFA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제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유로 1992 지역예선에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으나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침략국으로 낙인찍혀 국제 무대에서 축출당했고, 그로 인해 조 2위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이 대신 유로 1992에 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대회 직전 대타 출전한 덴마크 대표팀이 덜컥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출생의 탑급 유망주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고, 1987년 FIFA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승도 했기 때문에 만약 이 지역이 독립하지 않고 그대로 유고슬라비아로 지속되었다면,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떡밥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이 되었다. 이 시기 그야말로 유럽 축구계에 족적을 남긴 유고 출신 명선수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인데 선수 목록을 살펴보자면, > [[사페트 수시치]](Safet Sušić) - 보스니아[* 1955년생. 아래 언급한 선수들보다는 대선배.] > [[흐리스토 비다코비치 사비치]](Hristo Vidaković Savić) - 보스니아 > [[다르코 판체프]] (Дарко Панчев) - 북마케도니아 > [[네나드 마슬로바르]](Nenad Maslovar) - 몬테네그로 >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ćević) - 몬테네그로 >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Predrag Mijatović) - 몬테네그로 > [[드라간 스토이코비치]](Драган Стојковић) - 세르비아 > [[고란 부녜브체비치]](Горан Буњевчевић) - 세르비아 > [[고란 조로비치]](Горан Ђоровић) - 세르비아 > [[슬라비샤 요카노비치]](Славиша Јокановић) - 세르비아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Синиша Михајловић) - 세르비아 > [[블라디미르 유고비치]](Владимир Југовић) - 세르비아 > [[드라간 판텔리치]](Драган Пантелић) - 세르비아[* 1951년생. 원조 '''골 넣는 골키퍼'''. 통산 A매치 19경기에 출장, 통산 2득점을 기록했다.] > [[보라 밀루티노비치]](Бора Милутиновић) - 세르비아[* 1944년생. 선수로써의 커리어는 미미했지만, 은퇴 후 지도자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코스타리카,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미국을 16강에 올려놓는 등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수완을 인정받았다.] > [[밀린코 판티치]](Милинко Пантић) - 세르비아 > [[즐라트코 자호비치]](Zlatko Zahovič) - 슬로베니아 > [[알렌 부치시치]](Alen Vučkić) - 크로아티아 > [[다보르 슈케르]](Davor Šuker) - 크로아티아 >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 크로아티아 > [[로베르트 야르니]](Robert Jarni) - 크로아티아 >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Robert Prosinečki) - 크로아티아 > [[이고르 슈티마츠]](Igor Štimac) - 크로아티아 > [[드라잔 예르코비치]](Dražan Jerković) - 크로아티아 등등 이외에도 많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국가 아래에서 뛸 수 있었다면 적어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유로]]나 [[FIFA 월드컵|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한 번 차지할 수 있었겠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이들이 활약한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유고 대표팀 및 유고 청소년 대표팀은 공포의 대명사였다.[* 이는 1987년 20세 이하 칠레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것으로 증명된다. 보반, 야르니, 프로시네치키, 슈케르, 미야토비치 등이 출전했다. 당시 조별예선에서 칠레, 호주, 토고를 각각 4:2, 4:0, 4:1로 가볍게 제압하고, 8강, 4강에서는 브라질과 동독을 각각 2:1로 무찌르며 결승에 진출, [[서독]]을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UEFA 유로 1992]]와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미국 월드컵]]을 비롯한 1990년대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차례로 독립하더니 몬테네그로도 떨어져 나가면서 유고 축구팀은 완벽히 해체되었다. 결정적 계기는 [[보스니아 내전]]. 내전이 시작하자마자 미국, 영국 등 서방 세계의 [[NATO]] 가입국들의 주도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신 유고 연방]]에 대한 경제 제재와 무역 금수 조치가 단행되었고, [[UN]]은 신 유고 연방을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후신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UN에서도 쫓겨났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은 스포츠 부분이었다.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경기 출전 금지령까지 내려진 것. 그렇게 벌어진 유로 1992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 조별예선에서 7승1패 승점 14점으로 1위를 차지했으나 이듬해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모든 국제 활동이 금지되면서 유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당시 같은 조 2위는 6승1무1패 승점 13점[* 당시에는 승리시에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을 주는 제도였다.]이던 덴마크였는데, 대회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와 친선전을 가지려던 덴마크는 갑작스런 통보를 받고 본선에 출전하여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을 차례로 따돌리고 동화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나마 전쟁이 수습된 후인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월드컵]] 때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신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가 각각 월드컵에 진출했고, 이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는 16강에 오르는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참고로 유고슬라비아를 16강에서 꺾은 팀은 당시 제2의 전성기를 보내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는 3~4위전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패배를 당했다.] 만약 구 유고 연방이 붕괴되지 않고 이 대회에 출전하여 크로아티아의 멤버 외에 다른 유고 연방 계열 국가의 멤버들이 함께 뛰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202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라서, [[얀 오블락]]과 [[사미르 한다노비치|한다노비치]]의 슬로베니아를 필두로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네마냐 마티치|마티치]], [[두샨 타디치]] , [[두샨 블라호비치]],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등을 배출한 세르비아나, [[요슈코 그바르디올|그바르디올]], [[루카 모드리치|모드리치]], [[이반 라키티치|라키티치]], [[마테오 코바치치|코바치치]]를 보유한 크로아티아, [[아미르 라흐마니]]를 보유한 코소보와 [[엘리프 엘마스]]를 보유한 북마케도니아, [[스테판 사비치]]를 보유한 몬테네그로 선수들을 조합해보면 유럽 내 어느 강호팀을 상대로도 꿀리지 않는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다. 베스트 일레븐을 대략 짜보자면... ||<-4> FW [br] [[이반 페리시치]] ||<-4> FW [br] [[두샨 블라호비치]] ||<-4> FW [br] [[두샨 타디치]] || ||<-3> MF [br] [[루카 모드리치]] ||<-3> MF [br]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3> MF [br] [[마테오 코바치치]] ||<-3> MF [br] [[엘리프 엘마스]] || ||<-4> DF [br] [[요슈코 그바르디올]] ||<-4> DF [br] [[스테판 사비치]] ||<-4> DF [br] [[아미르 라흐마니]] || ||<-12> GK [br] [[얀 오블락]] || || || || || || || || || || || || || || 이 정도가 되겠다. 여기에 좀 더 엄밀한 계산을 위해 '''외국으로 피난하여 정착한 난민과 그 2세 선수들까지 포함한다면...'''[* 이 때문에 각종 매체에서 뽑는 난민 축구 선수 베스트 일레븐 역시 어지간한 축구 강국에 꿀리지 않는 월드클래스 라인업이 나온다. 위의 선수들 대부분이 꼬맹이 시절부터 공놀이가 난민촌 생활에서의 유일한 낙이었던 유고 내전 난민들이라 2010년대 난민 베스트 일레븐은 가상 유고 연방 베스트 일레븐이나 다름없다.] 여담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 이후 월드컵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구성국 2개국이 출전하는 징크스가 있다.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신유고연방, 크로아티아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 [[2006 FIFA 월드컵 독일]] - 세르비아-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참고로 이들 중 토너먼트 진출한 팀은 크로아티아(1998년 3위, 2018년 '''준우승''')와 신 유고 연방(1998년 16강)이 있고, 나머지는 죄다 월드컵에서 최소 1승은 챙겼다. 참고로 구 유고 연방 구성국 중에 출전하지 못한 나라는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3국이다. 특히 연방 해체 이후 유고를 실질적으로 계승한 세르비아보다 유고에서 독립해나간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 이후 훨씬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크로아티아가 1992년 독립한 이후 참가한 대회에서 월드컵, 유로 모두 '''단 한번'''씩을 제외하고 전부 본선에 진출한 반면,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분리한 2006년 이후 유로는 한 차례도 나가보지 못했고, 월드컵도 2번밖에 못 나가 크로아티아와 비교가 된다. 게다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8골'''이나 득점한 유일한 나라라는 나름 자랑할만한 기록(1934년 스코어 8:4)이 있다.[* 단 이때는 브라질이 강팀이 아니었으며 브라질이 본격적으로 우승 후보로 거듭난 시기는 1950년부터다.] [[https://sports.naver.com/news?oid=052&aid=0000538262|#]] 한국과의 상대 전적은 4승 3무로 절대 우세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고슬라비아 시절 전적이고 이후의 전적은 아래의 문단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